<나무들 비탈에 서다>
저자: 황순원
소나기로 유명한 황순원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가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46세(1960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지는 젊은이들을 그렸다.
원래 이 작품은 내가 고딩시절, 즉 30여년전에 볼 수 있었는데 당시 내 감각에는 너무 날카롭게 느껴져서 조금 보다가 포기했다. 그 후 언젠가는 꼭 보리라 다짐하면서도 시간만 흐르다가 드디어 이번 추석에 나에게 주는 선물로서 보았다.
1. 동호
초반의 주인공이다. 국문과를 다니다 한국전에 징집되었고 많이 순수(순진?)하다. 숙이라는 애인이 있지만 징집되기 전날, 같이 밤을 보내면서도 결국 성관계는 갖지 않을 정도로 애인의 의사를 존중해준다. 이런 그가 군에서 현태라는 리더십 있는(짐승같은?) 동료를 사귀게 되고 그의 권유 하에 드디어 술집 창녀와 첫경험을 한다. 그 후 더러워졌다는 결벽증 탓에 숙과의 연락마저 다 끊고 그 창녀에게 집착하다가 그녀와 다른 남자와의 잠자릴 목격하고 이들에 총을 쏜 후, 본인도 자살한다.
2. 현태
가장 주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부잣집 큰아들로 사회학과를 다니다 징집되었다. 아버지의 지원 하에 모든 면에서 상당히 풍요로운 생활을 한다. 결혼 할 여자가 아닌 모든 여자는 성욕의 대상으로만 보며 좋게 말하면 남자답고 나쁘게 말하면 더없이 거칠고 이기적이다. 동호의 자살에는 자신도 어느 정도는 책임이 있으면서도 끝까지 인정 안 한다. 제대 후 아버지 회사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잘 지내다가 한국전 당시, 아무 죄도 없는 모녀를 후송하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목 졸라 죽인 경험이 떠올라 서서히 미쳐간다. 이발, 면도, 규칙적인 생활, 직장 등을 모두 무시하고 아버지의 보호 속에 술과 향락에만 빠져 지낸다. 심지어 동호의 자살원인을 알고 싶어 찾아온 숙을 호텔에서 강간하기까지 한다. 그나마 마음을 주던 계향이란 지능이 낮은 창녀가 죽고 싶다는 말을 하자 그 자리에서 소지하고 있던 단도를 빌려주어 자살을 돕는다. 이 때문에 자살방조죄로 교도소에 수감된다.
3 윤구
동호, 현태와 함께 군생활을 한 동기이다. 상대를 나와 은행에 입사하는 것이 꿈이었고 제대 후 이 꿈을 이루었지만 가정교사로서 만나 애인까지 된 부잣집 딸이 자신이 주선한 낙태의 후유증으로 일주일 만에 죽었기 때문에 퇴사한다. 이 죽음에는 현태도 책임이 있다. 윤구는 자신에게 암암리에 도움을 주는 현태를 믿고 이 애인을 보여줬는데 이 애인은 현태에게 빠져서 결국 현태의 아이를 가지기 때문이다. 퇴사 후, 그가 양계장 하는 것을 현태가 금전적으로 도와주자 자신의 애인을 건드렸음에도 말 한마디 못하는 비굴함을 보인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기에 가장 사회적으로 성공의 가능성이 높은 캐릭터로 그려진다. 현태의 강간으로 인해 그의 애를 가진 숙이가 출산 때까지만 몸을 의탁하고 싶다고 소설 말미에 찾아오지만 매몰차게 거절하는 냉혹함을 보인다. 동호를 문제의 그 창녀에게 이끄는 데는 윤구도 한 몫 했다는 점에서 현태만큼은 아니지만 역시나 상당한 무책임함의 소유자다.
4. 석기
동호가 자살한 후, 그의 빈자리를 채우며 윤구, 현태와 어울린 친구이다. 법대출신이지만 미들급 권투선수를 할 정도로 복싱에 빠졌다가 전쟁에서 시력을 많이 잃고 선수생활을 접는다. 법관을 만들려는 아버지의 뜻을 안 따랐기에 사실상 아버지에게서 버림 받은 상태이다. 이런 그를 현태가 여러모로 돕는다. 한국전 징집을 피하려 손가락을 자른 깡패들과 싸우다가 칼을 맞고 한 쪽 팔이 불구가 된다.
5. 숙이
동호의 애인이다. 외국계회사의 타이피스트를 할 정도로 교양이 있지만 지나친 이상 탓인지 동호에게 안 보이는 굴레를 씌운다. 이를 사랑이라 착각했던 동호는 성욕을 이기지 못하고 창녀를 만나고 결국 이를 자책하다가 전술한 것처럼 자살한다. 정말 동호를 사랑했다면 본인이 직접 성욕을 풀어줌으로써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최선이었을 텐데 이를 하지 못한다(안한다?). 동호의 자살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현태와 윤구 등을 집요하게 찾아 다니다 호텔방에서 현태에게 강간당한다. 그곳으로 현태를 유인한 자가 다름아닌 숙이라는 점에서 이 여자의 책임도 어느 정도는 있어 보인다. 현태의 아이를 임신했으면서도 낙태를 선택 안하고 출산을 하려 한다. 이를 전쟁으로 인한 파탄의 구원이라 해석하는 문학평론가도 있던데 말장난 같다. 현태 집이 워낙 부자라 이 아이를 통해 한 재산 받아 내려는 김치녀의 꼼수로 해석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듯하다.
6. 총평1
일제시대나 6.25 그 후 한국 현대사를 다룬 소설들을 보면 대부분이 민족, 이념, 남녀차별 등 지나치게 도식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이 있기에 사회나 국가, 민족이 존재 가능하다는 점에서 왜 개인에게 포커스를 맞춘 작품들은 많지 않은지 항상 불만이었다. 이 작품은 이런 점에서는 꽤 비약적인 작품이다. 기계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전쟁 그 자체가 남긴 상처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다만 중간중간 보이는 구태의연한 표현들이 집중을 다소 방해한다.
7. 총평2
최인호의 소설 <겨울나그네>에도 순정을 바친 여자는 건드리지 못하다가 창녀에게 빠지고 이를 자학하다가 인생을 망하는 캐릭터가 나온다. 한때 이런 남자주인공이 영화나 드라마에도 많이 나오곤 했다. 전혀 멋있지 않고 바보의 전형일 뿐인데 <나무들 비탈에 서다>가 이런 전혀 쓰잘데기 없는 관념의 시초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씁쓸함이 느껴진다.
8. 총평3
아무 것도 아닌 소설을 왜 30여년이나 보지 못하고 시간을 끌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 동호 같은 캐릭터가 되고 싶지만 그러기엔 자살이 너무 무섭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는 동호라기보다는 현태에 가깝다. 다만 완전한 현태는 아니고 그래도 동호의 감수성을 조금이나마 유지하고 싶은 현태라고나 할까. 동호의 자살보다 더 바보 같은 행위라고 욕먹겠지만 피상적으로나마 동호의 순수함을 유지하고 싶다. 비록 살아남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며 별 짓 다하는 중년이 되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동호를 위한 방을 마련해 놓고 싶다. 그 방에 동호가 사는 것을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이런 바보 같은 욕망을 지녔기에 나는 제대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9 총평4
1960년은 공교롭게 전후 최고의 소설이라 불리는 <광장>이 출간된 해이기도 하다. 당시 저자인 최인훈은 25세였다. 해방직후 월남한 청년이 남과 북 어디서도 자리 잡지 못하고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나무들 비탈에 서다>와 다소 유사하다. 다만, 46세이던 황순원과 25세이던 최인훈의 나이 차 탓인지 단어, 표현, 감각 등에서 광장이 훨씬 세련되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나는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더 높이 사고 싶다. 이념 등을 떠나 온전히 개인의 관점에서 인간군상의 파탄을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10. 총평5
전쟁보다 좋은 문학소재는 없다는 말이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전쟁과 평화>, <서부 전선 이상없다>, <25시> 등 무수히 많은 명작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 최고 비극이었던 6.25를 배경으로 한 명작은 솔직히 거의 찾기 힘들다. 혹자는 <태백산맥> 등을 높이 평가하나 민족이나 남과 북이라는 특수상황에 너무 집착했다는 점에서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그나마 이 <나무들 비탈에 서다>가 그 역할을 해주길 바랬지만 다 읽고난 지금, 그것은 너무 큰 기대였음을 인정한다.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6.25를 다룬 누구에게도 자랑할만한 작품이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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